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칠리아 왕국 (문단 편집) ==== 동로마 제국의 역습 ==== [[파일:Southern_Italy,_ca._1000_AD.svg.png]] 9세기 동로마 제국의 남부 이탈리아 재정복. [[파일:1200px-Italy_1000_AD.svg.png]] 서기 1000년경의 남부 이탈리아 867년 황위에 오른 [[바실리오스 1세]]는 이탈리아에 대한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868년 함대를 파견해 [[달마티아]]에 대한 패권을 재확립했으며, [[아풀리아]]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아랍 세력과 지속적인 전쟁을 벌였다. 885년 이탈리아 남부 전선으로 파견된 [[대 니키포로스 포카스]]가 타란토, 바리, 산타 세베리나, 레기온, 타오르미나, 트로파이 등 여러 도시를 탈환하고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을 이탈리아 남부로 이주시켜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을 회복했다. 885년 바리에 동로마 총독부가 설치된 뒤, 동로마 제국은 남부 이탈리아를 지속적으로 공략했다. 특히 10세기부터 동로마 제국의 국력이 신장하면서, 남부 이탈리아에 대한 제국의 통제력이 강화되었다. 남부 이탈리아의 랑고바르드계 귀족들은 막대한 공물을 제국에 바쳐야 하는 상황에 불만을 품고 제국으로부터 독립할 기회를 엿봤다. 그러던 1015년경, 40명 가량의 노르만족 순례자들이 아풀리아 북부 몬테 가르가노에 있는 대천사 미카엘의 동굴 수도원을 순례했다. 이때 바리의 랑고바르드 귀족 [[멜루스]]가 그들에게 접근했다. 멜루스는 1009년 동로마 제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1010년 제국의 이탈리아 총독 바실리오스 메사르도니테스에게 패배해 바리를 상실한 뒤 몬테카시노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은거했다가 동로마 제국을 적대하던 교황 [[베네딕토 8세]]의 도움으로 가릴리아노 요새에 자리잡았다. 멜루스는 노르만 순례자들의 지도자 라눌프 드렝고(Rainulf Drengot)에게 자신이 바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며 풍부한 전리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1017년, 라눌프와 노르만 용병대는 카푸아에서 멜루스 휘하의 랑고바르드군과 합세한 뒤 아풀리아로 진격했다. 이후 1018년 10월까지 아풀리아 전역을 석권하며 동로마 제국을 남이탈리아에서 축출하는 듯했다. 1018년 10월, [[바실리오스 2세]]로부터 [[바랑인 친위대]]와 막대한 군자금을 지원받은 이탈리아 총독 바실리오스 보이안네스는 군대를 일으켜 그 옛날의 포에니 전쟁의 주요 전투와 같은 장소의 [[칸나이 전투(1018년)|칸나이에서]] 랑고바르드-노르만 연합군과 맞붙었다. 결과는 동로마군의 압승이었고, 멜루스는 아내와 아들 [[아르이로스]]를 비롯한 모든 가족과 병력, 세력 기반을 모조리 빼앗기고 독일로 망명했다. 하지만 바실리오스 보이안네스는 노르만족의 용맹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들에게 높은 급료를 주고 북쪽의 [[신성 로마 제국]]과 남쪽의 [[시칠리아 토후국]]의 침략으로부터 변경 요새를 사수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 후 라눌프 드렝고는 동로마 제국과 랑고바르드 귀족들, [[교황령]],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에 잇따라 고용되어 전장에서 용맹을 떨쳤고, 1030년 나폴리 공작 세르기우스로부터 아베르사(Aversa) 일대를 영지로 수여받으면서 남이탈리아에 정착했다. [[노르망디 공국]]에서 부모로부터 토지를 물려받지 못해 곤궁하게 살아가던 노르만 전사들은 라눌프의 성공담을 전해듣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남이탈리아로 대거 이동했다. 이리하여 훗날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제패한 시칠리아 왕국을 건국하게 될 노르만인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